16년? 17년 전? 하여튼 그맘때 겨울, 추웠다. 수능일 아침 후배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그해 언어 영역이 아마 제일 어려웠다. 1교시가 끝나고 곳곳에서 친구들의 멘붕 표정. 나 역시 별표 표시한 문제가 몇 개였는지 모른다. 막판에 마킹을 잘못해서 답안지를 바꿨는데 다시 한 문항을 이상하게 표시했다. 3번을 칠하면서 살짝 4번 칸에 걸친 느낌. 정답으로 표시될 수도 중복 마킹으로 표시될 수도 있는 상황. 시간이 없었다. 그냥 제출했다. 운명에 맡기자.
쉬는 시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나간 건 잊자고 생각했다. 수능은 역시 멘탈이 중요하다. 차분하게 제 페이스를 찾고 수학을 풀었다. 1교시 페이스에 휘말린 다른 한 친구는 2교시가 끝나고서도 붉게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결국, 그 친구는 재수했다.
점심을 먹고 살짝 잠이 왔지만, 인생의 중요한 고비가 될 수능이 주는 긴장감은, 능히 저따위 잠쯤 가뿐히 이겨냈다. 영어 듣기는 늘 그렇듯 긴장됐다. 순간 한 문장이라도 놓쳐버리면 어쩌나. 길을 찾아가는 그런 듣기 문제는 정말 순간이었다. 초집중. 영어까지 모두 풀고 나니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느낌. 그래, 이제 끝났구나.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식당 텔레비전에선 수능 정답 풀이가 나오고 있었다. 친구들은 보지 말자 했다. 채점을 왠지 하기 싫었다. 지금 이 기분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다.
집에 와서 잠을 잘 잤다. 아침에 집에 신문이 배달됐고, 수능 정답과 해설이 보였다. 애라 모르겠다. 채점을 했다. 잘 못 본 것 같은 1교시는 뒤로 밀어 놓고 우선 2~4교시를 채점했다. 나쁘지 않았다. 미뤄놨던 1교시를 채점했다.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최악도 아니었다. 1교시 이후 제 페이스를 찾아 나머지를 잘 봤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 고 3 교실은 대체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다. 가채점 결과를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후련했다. 그래 이제 못 놀던 것 맘껏 놀아보자. 당장 그날 방과 후 공을 찼다. 하지만 고3 때 짬을 내서 하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역시 긴장감 속에서도 짬을 내서 하는 그런 운동이나 놀이가 더 재밌나 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대학엘 갔다.
내일 수능을 앞두고 16년? 17년 전? 그때가 떠오른다. 그래서 추억을 꺼내 몇 자 적어본다. 까마득한 후배들, 긴장하지 말고 지나간 과목, 놓친 문제 연연 말고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길. 내일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전날인 오늘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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