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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신문과 방송의 차이


신문이든 방송이든 취재기자가 어떤 취재를 했는지, 취재한 내용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글이나 말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지에 따라 기사 가치가 갈리는 것은 공통점이다.


둘의 차이를 들라면 어떤 면에선 작지만, 또 생각해보면 무척 크다.

 

신문은 지면이나 인터넷상에 찍힌 활자를 통해 독자와 만난다. 내 몸 상태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사실 기사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리거나 전날의 과음 등으로 컨디션 조절을 못 했을 때라도 신문은 취재만 제대로 되고 작법에 공을 들인다면 훌륭한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은 그렇지 않다. 특히 생방송의 경우, 콘텐츠뿐만 아니라 몸으로 말해야 한다. 전달하는 기자의 상태가 부실하면 기사 가치가 아무리 뛰어나도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고가의 선물을 검은 봉다리에 담아 주는 격이라고나 할까.

방송의 경우 여기서 공정함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같은 기사를 내보낸다 했을 때 A 기자가 전달하는 기사와 B 기자가 전달하는 기사는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신뢰도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 유명했던 한 증권 기자가 증시 뉴스를 전하면 주가가 움직인다는 말은 유명한 일화다. 같은 증시 뉴스를 전하지만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는 따로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만 보면 공정성의 문제는 단지 외적인 요소로만 비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들어가면 이게 단순히 외적 요인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지상파와 종편 등 방송가에선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가 깨지고 종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그건 단순히 종편 기자들의 외모 등 외적 요인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아니다. 후발 방송들의 새로운 시도, 헝그리 정신으로 분석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있다. 팩트 파인딩을 위한 노력과 지속적으로 시청자에게 신뢰도를 주기 위한 꾸준한 노력 역시 간과하긴 힘들 것이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정권이나 외압에 덜 흔들리는 방송사 구조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시 방송 공정성 문제로 돌아와서 보면, 외적 요소에 따라 신뢰도가 갈리는 것은 얼핏 불공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신뢰도를 쌓을 때까지 들이는 시간과 방송 구조 개선 노력 등을 고려하면 결국 외적인 부분도 공정함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외모에 들이는 공은 결국 내공을 수반한다고나 할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잠시 후 생방송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활자를 통해 주로 독자와 만나는 내가, 작은 방송이지만 가외로 매주 생방에 나가게 되면서 방송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욋일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생방을 앞두고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몸은 최상의 컨디션인가. 콘텐츠만 신경 쓰던 나였다. 외모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너무 지나치지는 않았나. 목 상태는 정말 중요하구나. 몸 관리 목 관리에 신경 쓰는 모든 방송인이 새삼 존경스럽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나는 방송보단 지면이다. 한정된 지면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승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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