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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거침없는 삶

낭만브라더가 그린 체게바라


열혈강호가 70권이 나올 동안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천하오절 중 한 명인 괴개가 나오는 부분을 몇 손가락 안에 꼽는다. 괴개가 숨을 거둘 때 주인공 한비광을 향해 하는 명대사는 우리들 청춘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난 네가 부러웠다. 단 한 순간 만이라도 너처럼 거침없이 살고 싶었어"


거침없는 삶.


사실 젊어서 딸린 식구도 없고 밥 한두 끼 굶어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때, 그까짓 거 한 번 부딪혀 보고 안 되면 그만이고 다른 길을 모색하면 된다고 생각할 때 이를 실천하기는 쉽다. 그러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챙겨야 할 대소사의 무게만큼 ‘거침없는 삶’에 방해되는 거치는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된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환영할 만하지만, 인생의 짐이 걸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짊어져야 할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도 무책임하다.


오늘 문득 인생의 짐과 거침없는 삶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까 고민이 들었다. 내년의 방향을 결정하는 어떤 자리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섞는다면 선택의 순간에 누군가는 거침없는 삶의 편을 택했고, 누군가는 인생의 짐을 상당 부분 고려한 선택을 했다. 모두 명분은 분명했다. 결과는 다수였던 후자로 결론 났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몸부림치지 않는 이상 현실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수렴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전자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선택이 거침없는 삶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냐'는 고민을 들었다. 이걸 선택한다 해도 사실 나는 잃을 게 별로 없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는 과연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완전한 예스도 완전한 노도 아니다.


이런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니,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나이는 거침없음과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며칠 뒤면 한 살 더 먹는다. 사실 두렵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저함이 많아질까 봐서다.


다시 명언을 떠올린다.

체게바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어떤 상황에서도 가슴속에 간직한 거침없는 삶이라는 이상의 불씨는 꺼뜨리지 말아야겠다. 오랜만에 거침없이 한 번 달려봐야겠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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