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치열했던 꿈을 스크린(영화 ‘국제시장’, ‘변호인’ 등)에서 찾는 지금, 우리는 아니 우리의 젊은이들은 꿈을 빼앗기고 미래가 차단된 ‘미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간이 있다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좋겠지만, 조 교수가 말한 것처럼 미생의 시대를 살기에 취업 준비에 빠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책의 머리말이라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저자는 모든 사회질서의 정점에 정치질서가 있는데 우리 사회의 정치는 두 번의 보수 정권 동안 ‘시민을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랜 권위주의 정치관행이 재림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정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시민의 삶으로부터 정치를 점점 더 분리시키는 기형의 정치, 국민을 두 편으로 가르는 ‘두 국민 정치’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를 국민이 선택한 이유도 꿈을 잃은 요즘 시대에 산업화 시대의 꿈을 재현시켜줄 것 같은 환상 때문이었지만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환상 대신 악몽이었다.
이런 주장만 이 책에서 나열했다면 감정에 호소하는 격문에 지나지 않았겠으나, 조 교수는 사회학자답게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2011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공공성’을 강화하는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새 질서의 모습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냉전 질서를 지탱했던 한 축인 자유민주주의로의 회귀는 아니라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방패막이 되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정치와 시민의 삶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요즘에도 대통령이나 여당을 중심으로 이 (과거의 상징인) 자유민주주의를 국가가 지켜야 할 가치로 당연시하고 있는 현실은 곧 국가가 미래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분법의 정치는 자기진영의 대중적 기반을 고도로 제한하는 축소지향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할 민주주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자유민주주의로의 회귀가 아닌 해체된 시민 개인의 삶을 회복시키는 일, 사회의 궁극적 요소는 시민의 ‘생활’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봤다.
"국가와 정치와 민주주의가 추구하던 모든 형식과 장식을 내려놓고 나면 남는 알맹이는 ‘생활’이다.
머리말에서 밝힌 저자의 결론은 이제 정치가 개인의 구체적인 삶, ‘미시정치‘ ‘미시민주주의’, 실존적 삶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주류층을 끌어안고 주류층으로 나아가는 정치’, ‘외연을 확장하는 정치’, ‘포용하는 정치’… 이런 정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비배제적 포괄성’과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다원적 진보성’을 동시에 갖는 특징이 있다.
정치와 국민의 매개체가 되는 정당이 지금까지는 정치와 국민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면, 앞으로는 ‘생활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한 변화의 전제 조건으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정당으로의 전환도 예로 들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 정치의 후진적 현주소를 느끼게 된다. 정치 수준이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저자가 말하는 정치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한 발짝 앞의 지향점을 제시해야 따라갈 만한 용기라도 갖게 될 텐데, 왠지 두세 발짝 앞의 정치 지향점을 제시해놨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직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 싸움에 골몰하고, 정당을 이루는 핵심인 국회의원들은 대의보다 재당선에 관심이 많고, 줄세우기 정치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정치와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진 않을까. 어쨌든 지향점을 백 보 앞으로 잡고 발버둥 치다 보면 한두 걸음이라도 전진하지 않을까. 저자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적어도 국가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당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고민하는 생각 있는 정치인들에게 작은 속삭임이라도 된다면 더 이상의 바람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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