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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책책책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영국 자유당의 역사) / 강원택 교수 / 오름


선거구 획정조차 못하는 여야가 계파별로 분열하고 있는 씁쓸한 정치 현실을 보면서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를 펴 들었다. 영국 자유당의 역사에서 분열과 리더십의 부재가 거대 정당을 일순간 몰락시킬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당은 1906년 총선때만 하더라도 400석이라는 압도적 우위로 집권당이 됐지만,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지 못하고 지도층이 끊임없이 분열하는 통에 1924년 총선에선 결국 40석에 그치게 됐다. 자신들이 차지하던 정치 권력을 보수당과 신생 노동당에 조금씩 빼앗긴 결과는 냉정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예상대로 어느 한순간의 결정적 잘못이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분열하고, 정책 노선을 잘못 그린 탓에 서서히 침몰해 갔다.


주요 지점별로 총선 결과와 핵심 배경들을 정리해 봤다. 정리를 하다 보니 요즘 야권의 분열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1874년 총선 보수당 350석, 자유당 242석, 아일랜드 자치당 60석/ 자유당 인기 별로 높지 않아

1880년 총선 보수당 237석, 자유당 352석, 아일랜드 자치당 63석 / 전국자유당연맹이 지지자 결집, 일반적 원리 강조해 지지자들 단합 이끌어

1884,1885년 선거권 확대, 의석 재배분

1885년 총선 보수당 247석, 자유당 319석, 아일랜드 자치당 86석 / 농촌 선거구에서 선전 

1886년 총선 보수당 316석, 자유당 192석, 자유당 연합파 77석, 아일랜드 민족당 85석 / 아일랜드 자치 문제에 대한 승인을 묻는 국민투표 성격

자유당 연합파가 총선 이후 자유당 쪽에 가까웠지만 보수당 내각에 참여하는 등 점차 보수당 성격을 띰, 아일랜드 자치당 지도자 혼외정사 사건이 터져 가까웠던 자유당이 또 한 번 영향 받게 돼. 이후 자유당 연합파는 자유당과 완전한 결별

1892년 총선 보수당 268석, 자유당 연합파 45석, 자유당 272석, 아일랜드 민족당 81석 / 아일랜드 자치 문제, 8시간 노동 법 규정 문제, 농지 분할 등 관심, 분명한 승자가 가려지지 않은 선거

1895년 총선 보수당 340석, 자유당 연합파 47석, 자유당 177석, 아일랜드 민족당 81석 / 자유당 리더십 안정적이지 못하고 선거운동도 효과적이지 않아

자유당 상황 갈수록 악화, 당수직 맡을 리더십 부재. 1899년 2차 보어전쟁을 두고 자유당 분열

1900년 총선 보수 연합당 402석(보수당 334석, 자유당 연합파 68석), 자유당 184석, 아일랜드 민족당 82석 / 전쟁 승리와 자유당의 분열

1902년 갑작스레 자유당 내 상황 반전 / 교육법 개정을 계기로 자유당 단합, 반면 보수당은 관세개혁 문제를 놓고 내부 분열

1906년 총선 보수당 157석, 자유당 연합파 25석, 자유당 400석, 아일랜드 민족당 83석, 노동자대표위원회 29석(노동당)

보수당 내부는 관세개혁 반대론자들이 대거 낙선하면서 당내 분위기가 관세개혁 지지로 변모

1910년 1월 총선 보수당 273석, 자유당 275석, 노동당 40석, 아일랜드 민족당 82석 / 자유당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반발, 12월 총선도 비슷한 양상

아일랜드 독립 이슈가 불거질 때쯤 1차 세계대전, 자유당 과격파들로 인해 심각하게 분열, 보수당도 분열했으나 자유당만큼 심각하진 않아. 전시 연립정부 구성

1918년 총선 연립정부(보수당 383명, 자유당 136명), 노동당 63석 / 노동당의 약진을 연립정부 소속 의원들이 막아냈지만 이후 노동당은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연이어 승리

자유당은 오른쪽 보수당과 왼쪽에서 서서히 부상하는 노동당 양쪽 모두 압박에 직면

자유당은 이후 분열, 연립참여 자유당이 전통 자유당과 별개의 조직으로 분리. 노동계급과 관련한 이슈에 자유당은 대응 한계

1922년 총선 보수당 345석, 노동당 142석, 국민자유당 62석, 독립자유당 54석 / 4당 경쟁, 보수당의 압승과 노동당의 진전. 자유당 세력의 참패

이후 자유당은 재결합과 재건에 나섰지만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결국 몰락




자유당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분열'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정리한 1922년 총선이 흥미롭다. 자유당이 분열한 끝에 4당 경쟁이 치러졌다. 노동당이 부상했고, 자유당은 참패했다. 오늘자 조간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이번 4월 총선에서 180석 운운한 것을 볼 수 있다. 집권여당이 야당의 분열로 호기를 제대로 맞았는지 집권 여당 대표가 저렇게 자신감에 차 호언장담하는 모습은 지난 총선에서도 지지난 총선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야당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호남이니 비호남이니 다시 지역색에 얹혀가려는 모습도 감지된다. 안철수 신당은 과연 1922년 대안세력으로 떠오른 노동당일까 아니면 몰락하는 위치에 있었던 독립자유당일까.


이 책의 저자인 강원택 교수는 에필로그를 통해 자유당이 갑작스럽게 몰락한 외부 원인을 소개했다.

1. 노동계급 부상에 따라 이들을 대표하는 노동당이 계급적 속성이 약했던 자유당을 대신해 한 축으로 자리잡음 

2. 1911년 민주주의의 장애물이었던 의회법이 개정되면서 정치적 해방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자유당의 존재 의미가 사라짐


하지만 저자는 이런 관점이 몇 가지 이유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 결국 자유당 몰락의 원인은 자멸로 결론을 내린다. 

1. 변화를 상징하는 진보세력이었던 자유당이 변화된 사회적 요구에 적시 대응하지 못한 점

2. 자유당을 이끈 지도층이 개인적 권력욕과 옛 가치에 매몰돼 있었던 점. 과거적 질서와 관행에 안주

결국 중산층 유권자는 보수당 쪽, 노동계급 유권자는 노동당 쪽으로 옮겨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국 자유당은 몰랐했어도 대안 세력으로 노동당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 현실에선 야권이 두 개로 분열될 경우 대안세력이 과연 있을까. 지금의 정치상황이 암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의당? 통합진보당의 부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가능성만 있지 쉽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이 180석을 언급할 정도로 1당 독주하는 것을 막을 대안 정당이 존재하나. 대안이 없다면 한국 정치는 올 4월 1당 독주를 경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몰락하는 자유당이 아닌 대안을 제시했던 노동당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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