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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육아아아하

육가지상사

내 삶의 변화 측면에서 보자면 결혼을 했을 땐 열에 하나 정도가 바뀐 것 같았다. 가정의 대소사를 챙길 식구가 배로 늘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다.

아이를 낳았을 땐 진정 달랐다. 열에 일고여덟은 바뀐 듯한 느낌이다. 뚜렷한 주관과 이성에 따라 살아온 인생 이력에 비춰봤을 때 이 변화는 나에겐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지배하는 변화였다. 육아는 이성이 통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가 새벽에 울어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신 나게 놀다가 돌연 짜증을 부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밥이 온전하게 입으로 투입되기까지 흘려야 했던 수많은 밥풀과 국물들, 내 너를 닦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식사 보조와 손빨래를 해야 했던가.(사실 이 대목은 내 와이프가 해야 할 말이다. 나는 왼손을 거든 정도 ㅡ.ㅡ; 어쨌든 기회될 때마다 열심히 거들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효도는 끝이다’는 육아 선배들의 농담 같은 말이 진담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었다. ‘정돈된 집’이라는 단순한 로망을 꿈꾼 게 언제였는지.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반나절을 넘기면 도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현실.

어른들이 아픈 건 이유가 비교적 분명하지만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병을 달고 산다. 육가지상사(育家之常事)라고 해야 하나. 면역력이 약하니 병이 잊을 만하면 또 등장한다. 고열인 아이를 들쳐 업고 처음 응급실에 달려간 기억이 생생하다. 초보 맘과 초보 아빠에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밤잠에 들지 않는 아이를 구박하다 자꾸 그러는게 이상해 불을 켰을 때, 몸에 두드러기가 난 걸 뒤늦게 알곤 가슴이 미어졌다. 몸이 이상한데도 말 못하고 끙끙댔을 아이를 생각하니... 응급실에 달려가니 그날 저녁에 먹인 호두를 섞은 죽이 문제였다.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며 유연하게 대처할 만하다 싶을 때 또 심한 장염이 덮치기도 했다.

말 문이 트이는 게 신기해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로 떼를 쓰기 시작하니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이성적인 대화가 실종되고 언젠가부터 떼엔 떼로 반응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이를 생각해서라지만 ‘조심해’ ‘안돼’라는 말이 내 입에서 버릇처럼 나왔다. 아이가 아빠 눈치를 보며 뭔가를 하면서 ‘조심해’라고 스스로 말하는 걸 볼 때 아이의 자율권을 너무 심하게 제약했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내 아비 어미가 언제 나를 ‘조심해’ ‘안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키웠던가.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철든다. 세상은 논리로, 이성적으로만 그렇게 단순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인생은 단면만 있는 게 아니라 다면체다. 연휴 간 무리하게 놀았는지 열이 나는 둘째 녀석 때문에 다시 맘이 쓰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