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사/육아아아하

줄기 있는 사탕의 감동과 경고장의 불편함 사이에서


#굳이 비싼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아이의 놀잇감이 된다. 티슈를 뽑아서 뭐하는가 싶었더니 이내 로봇 하나를 만들었다. 신이 난 녀석이 아빠와 엄마를 데려다가 자랑한다. ‘우와 멋진데’, 괜찮은 작품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한히 뻗어 나가는 걸 보면서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창의적 생각 자체도 그렇지만 표출할 때 어떤 걸 도구로 사용하느냐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단순히 코를 풀고, 바닥의 것을 닦을 때 쓰는 티슈를 가지고 로봇 하나를 뚝딱 만들어 냈으니. 티슈는 로봇으로 변했고, 앞서 두루마리 휴지는 한동안 여러 마리의 뱀 때로는 끝없이 연결된 긴 뱀으로 둔갑했었다. 아빠를 향해 이런저런 뱀들을 들고 ‘도망쳐’라고 하면, 퇴근에 지친 아빠는 또 기운을 끌어올려 침대 이불로 도망갔다가 소파 뒤로 도망갔다가 정신없이 무서운 뱀을 피해 유랑해야 했다.




#웬만하면 애들에게 사탕 같은 단것을 먹이지 않으려 한다. 피할 수 있을 때까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어느 날 설렁탕 집에서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주인아저씨가 아이들이 예쁘다며 ㅊㅍㅊㅅ 막대 사탕을 건넨다. 아빠가 감사히 받아놓고선, 인 마이 포켓 했다. 사탕을 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에겐 어른들이 먹는 사탕이라고 우긴다. 며칠 뒤 아이가 엄마에게 ‘줄기 있는 사탕’이 먹고 싶다 했단다. 그 소리를 전해 듣는 순간, 막대 사탕이 연상됐다. 이렇게 딱 맞는 비유라니. 내 머리에서 막대사탕을 비유하라고 했다면 나는 어떤 단어, 어떤 말을 떠올렸을까. 억지로 뭔가 그럴듯한 비유를 짜냈겠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비유들, ‘손잡이 달린 사탕’은 어떨까. 막대사탕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참신한 맛은 떨어진다. 막대가 손잡이 역할을 하고, 사탕이 끼워져 있으니 사실적인 분석을 늘어놓았다고 할까, 비유는 아니다.



#이렇게 창의력이 발현되는 아이들의 세계. 맘껏 뛰놀고 끼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하고 바라던 찰나, 한 장의 편지가 오늘 아파트 현관문에 걸어놓은 우유 수거함에 놓여 있었다. 이사 후 3개월 만에 드!디!어! 맞게 되는 아래층으로부터의 편지였다. 정중한 말로, ‘계속 참아보려 했으나 이제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층간소음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정중했지만, 명시돼 있진 않았지만, 이것은 분명한 ‘경고장’이다. 아래 층 분들께 죄송스럽고, 한편 3개월이면 오래 참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고민이 깊어진다. 두 녀석 모두 말로 해서 들을 나이가 아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의 ‘뛰지 마’ ‘살살’ ‘조심조심’이라는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을 듣고 이해될 리가 없다. 이런 아이들을 붙잡고 계속 조심시켜야 한다. 상태가 좋을 땐 ‘말’로 되겠지만 내 상태가 삐리한 날 혹시나 애들에게 ‘고함’이라도 치면... 자신이 도무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니 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발산 행위를 잘못으로 규정할 수 있나. 신 나게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억압을 강요해야 하는 아비의 마음. 미리 벌써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경고장을 보낸 분들은 얼마 안 가 이사를 갔다.)



#‘줄기 있는 사탕’의 감동과 ‘경고장’의 불편함이 뒤엉켜 근심이 드는 밤. 요즘 왜 이리 생각이 많은 건지. 아이들은 지금도 무슨 빨간 딱지가 집에 날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고함을 치고, 깔깔깔 웃고 있다. 한 번씩 쿵쿵거릴 땐 내 마음도 쿵쿵 내려앉는다. 어미도 어찌할 수 없이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아이들이 곧 잠들면, 찾아오는 한시적 평화 속에서 내치와 외치를 어찌 해 나갈지 뒷일을 모색해야겠다.


2016/06/06 - [인생사/육아아아하] - 육가지상사

2016/05/29 - [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 운동과 열정사이

'인생사 > 육아아아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와 우산  (0) 2016.09.09
아이들은 분출할 때 아이답다  (0) 2016.08.02
육가지상사  (0) 2016.06.06
저마다의 사는 법  (0) 2016.04.28
미운 다섯 살 방어법  (1) 201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