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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틈새 글쓰기

‘찜통더위’

 

뉴스를 보다가 문득 찜통더위라는 단어를 누군지 몰라도 참 잘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더웠으면 수증기로 익히게 만드는 조리기구인 찜통에다 더위를 비유했을까. 수증기가 통 안에서 돌고 돌아 푹푹 찌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사람을 덥게 만든다.


이 기막힌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네이버 검색이 닿는 1990년부터 이 단어가 검색되는 걸 보면 그 이전부터 사용된 말인 것은 분명하다. 1990년 기사에는 "장마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무더운 기류가 000에서 유입돼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돼 있다. 기상 기사는 예나 지금이나 ‘000’만 바뀌고 그대로다. 그 이후 여름만 되면 찜통더위라는 단어는 기상 뉴스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그러면 국어사전에는 언제부터 등재됐을까. 국립국어원은 찜통더위를 ‘뜨거운 김을 쐬는 것같이 무척 무더운 여름철의 기운’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전에 실린 것도 당연히 1990년 이전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2000년이었다!
2000년 봄 표준어 국어대사전을 새롭게 발간하면서 최혜원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사가 쓴 ‘표준국어대사전’의 특징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0_1/2000_0102.pdf)


<30페이지 참고>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새롭게 쏟아지는 어휘들도 최대한 반영하였다고 소개했다. 자료를 통해 얻은 신어로는

 ‘가정간호사’, ‘관광특구’, ‘광케이블’, ‘국민차’, ‘그린면허증’, ‘그린카드’, ‘독거노인’, ‘돈다발’, ‘돌발사’, ‘록오페라’, ‘망국병’, ‘미분양’, ‘바보상자’, ‘배낭여행’, ‘브이오디’, ‘실버타운’, ‘쓰레기 종량제’, ‘역세권’, ‘온난화’, ‘인턴사원’, ‘지구촌’, ‘찜통더위’, ‘차세대’, ‘채팅’, ‘타임캡슐’, ‘펀드매니저’, ‘폐휴지’, ‘폭주족’, ‘폰뱅킹’, ‘표밭’, ‘핸드폰’, ‘홈구장’, ‘히든카드’, ‘힙합’ 등이 있다.

 

찜통더위가 여기에 들어가다니. 오래전부터 사용됐던 단어인데 이때가 돼서야 사전에 들어간 게 더 신기했다. 찜통더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단어들의 면면을 보면 지금도 사용되는 미분양, 온난화, 표밭 등이 있지만, 점차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단어도 보인다. 지구촌, 폭주족 같은 단어들? 국민차, 바보상자 이런 건 뭘 의미하는지, 왜 표준어로 추가됐는지 선뜻 와 닿진 않는다.

 

여하튼 찜통더위라는 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불쾌감을 유발한다. 오늘도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