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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틈새 글쓰기

저마다의 독서법이 있다. 나의 잡식성 독서법

  


 나는 책을 동시에 이것저것 보는 스타일이다. 한 권에 꽂히면 끝까지 볼 때도 있지만 한 챕터를 읽고 책갈피를 꽂아놨다가, 다른 책의 어떤 부분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일정 기간에 책 2~3권을 동시에 볼 때도 있다. 예전에 조금 보고 꽂아뒀던 책을 한참 만에 다시 꺼내보기도 하고, 봤던 곳을 다시 들춰내 읽기도 한다. 목차만 보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마는 경우도 있다. 신영복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책장에 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담론’을 다시 열어보기도 했다.(후기를 남기려 했으나 워낙 많은 블로그에 후기가 올라와, 고인의 사망 소식에 편승하는 것만 같아 생각을 접었다)


 시간이 많다면 진중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좋겠지만, 이 바쁜 세상 언제 다 읽고 있겠나 싶다. 또 책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몰려있고, 나머지는 부연 설명에 그치는 부류의 책도 많아서 이런 책은 핵심만 보면 된다. 역사서와 같이 큰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책은 대체로 끝까지 다 읽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책을 읽는 집안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릴 때 이 집 저 집 유행처럼 구매했던 세계문학 전집도 그대로 자리만 차지한 채 어느 순간 이사와 함께 폐기 처분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고전 중 의무적으로 한 권씩 골라 방학 동안 읽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뽑아들었던 ‘죄와 벌’을 한 달 정도에 걸쳐 읽었다. 그 책을 다 읽고 고전의 매력에 흠뻑 젖어드는 것 같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여느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주입식 학교 교육을 받으며 독서가 설 자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책을 읽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만화책이었다. 00 책방, 00 도서 대여점 등이 생겨나 한창 붐이 일던 시절이다. 그때 뽑아든 슬램덩크, 열혈강호가 던져준 강렬한 인상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만화책이 지겨워질 무렵 옆에 있던 소설책에 눈이 갔다. 소설 동의보감을 읽었고, 한 번쯤 도전해 본다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뽑아들었다. 좌우 이념을 떠나 태백산맥 전권을 다 읽도록 만든 힘은 이 책에 간간이 등장하는 ‘야한 장면’들이었다. 확실한 동기부여는 완주를 가능케 했다.


 대학교 땐 책을 읽는 척만 한 것 같다. 사문철(역사 문학 철학)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별 감흥 없이 책을 읽었다. 억지로 하는 독서는 오래가지 않았고, 책이 자연스레 멀어졌다.


 책을 자발적으로 가까이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여러 사회 현상들을 바라보며 사고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 더 깊이,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가진 밑천이 부족했다. 비고 비인 머리에 양식을 주는 기분으로 책을 봤다.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빈속에 밥이 들어가니 이것처럼 꿀맛이 없었다. 의무감에서 읽던 책이 달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 태백산맥을 읽으며 느꼈던 그 흥분이 다시금 찾아왔다. 이번엔 단지 ‘야한 장면’만이 동기부여가 되진 않았다는 것이 차이였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으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내가 알던 사도세자가 그 사도세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이덕일 시리즈는 물론 다른 역사학자들의 책도 찾아보게 됐다. 일본과 미국 등 세계의 역사서에도 손이 갔다. 현재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역사서를 통해 체험했고, 역사는 더 이상 고등학교 국사 시간의 지루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먼지만 쌓인 세계문학 전집의 폐기를 경험했던 터라 다시 세계문학을 꺼내 들기 조심스러웠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리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감탄을 파우스트를 통해 하게 되면서 달라졌다. 밀란 쿤데라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을 때면 ‘진도 참 나가기 어렵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색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와 기욤 뮈소 부류의 책들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었다. 김훈의 글발이 부러웠고, 이외수의 생각, 정유정의 이야기전개를 보게 됐다. 문학은 의무감이 아닌 재미로 다가왔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연스레 철학책에도 손을 뻗어 기본서를 거쳐 시대를 관통한 철학자들의 책을 찾게 됐다. 사회과학 서적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 어떻게 보면 인풋과 아웃풋이 가장 확실하고, 즉각 결과물이 나타나는 것이 사회과학 서적이다.


 결혼 이후 최근엔 책을 소장해야겠다는 욕망에 불타올라 중고나라에 매일같이 들어가서 매일같이 책을 주문한 적도 있다. 법정이 남기고 간 책들, 파울로 코엘료,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제 그만 좀 사라"는 와이프의 핀잔을 들을 때까지. 구매한 책은 즉시 읽기도 했고, 한참 지나 읽기도 했다. 정제된 언어에 매력을 느껴 현대문학, 월간문학 등 시가 있는 월간지도 책장 한쪽에 자리 잡았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고전 읽히지 마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책을 읽는 동기는 흥미에서 출발한다. 의무감에서 하게 되면 오히려 멀어지는 역효과가 난다. 다만 내가 책 안 읽는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했다면 우리 아이들은 책장 가득 책이 꽂힌 집에서,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자연스레 지켜보며 자라게 되는 차이는 있다. 이 차이가 아이들에게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시키거나 강요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좀 더 일찍 책 읽기에 흥미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멀리했기 때문에 가까이 가게 되는 동기를 확실히 마련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욕망과 이것저것 장르 구분 없이 보는 습관이 더해져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만의 ‘잡식성 독서법’이 형성됐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법, 저마다의 독서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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