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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돌고 도는 중고책


책 넘기다 자칫 손가락을 그을 것 같은, 실제로 긋기도 하는 그런 새 책을 구매할 때면 펼쳐 드는 순간부터 느낌이 남다르다. 잉크 자국과 여백만이 존재하는 정갈함에 마치 내 마음도 정화되는 기분이다.


반면 중고 책은 새로운 맛은 없다. 아무리 깨끗한 책이라도 ‘새것처럼’일 뿐, ‘새것’은 아니다. 절반 혹은 그 이하로 내려가는 중고가격과 새 책의 원가를 고민하면서도 후자를 택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중고 책에는 왠지 모를 묵직함이 있다. 그 무게로만 따지면 새 책이 주는 신선함의 가치 못지않다. 오래된 중고 책일 경우에는 더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빛바랜 표지와 귀퉁이 한구석의 접힌 흔적, 모서리 부분의 맨들맨들함. 애써 만들려고 책을 바닥에 문지르고 구겨서 짧은 시간 가공해 봐도 그 맛은 나지 않는다. 시간이 녹아든 양질의 책이 절판까지 됐다면 가격은 새것과 비교할 바가 안 된다.


최근 인터넷 중고시장을 뒤져 구매한 몇몇 책이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맛에 푹 빠져 있다. 내용에 빠져야 하는데 책 외형이 주는 매력에 일단 흠뻑 젖었다. 어느 한 책에는 누군가의 밑줄과 메모가 남아 있었다. 이 책의 판매자인지, 아니면 이 책을 거쳐 간 사람인지 알 길은 없다. 그의 밑줄을 보며, ‘이 사람은 왜 여기 줄을 쳤을까’ ‘그에게는 이 말이 와 닿았나 보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그가 메모하면서 그의 인생에 이 한 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별별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한 책이, 내 인생에 찾아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책들은 또 어디로 가서 누군가의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할까. 물론 그저 한번 보고 말 그런 책들은 분리수거장 등으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내 손길이 녹아든 몇몇 책은 또 누군가에게로 향할 것이다. 중고시장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그일 수 있고, 또 가까이 있는 내 아들딸이 될 수도 있다. 내 손 때, 아니면 아주 가끔 등장하는 내 밑줄과 메모를 보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