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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아군과 적군의 경계에서 드는 단상

새벽 아침 시간,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곤히 잠든 아이들이 깰세라 현관문을 살며시 열어젖힌다. 외부에 조용히 다가서기도 전, 미간을 스쳐 지나가는 찬 공기와 금세 마주친다. 그들의 잔뜩 성 난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처럼 반응이 일관되고, 보더라도 VR(가상 현실·virtual reality)처럼 늘 새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는 강추위에 밤새 이리도 견뎠는데, 당신은 따스한 방에서 잘도 호의호식하다 나왔겠다?’ 등의 반응이다. 매일 아침마다 겪지만 늘 처음 대하는 것처럼 새롭다는 게 참 신기하다.

찬 공기는 모양새는 좌우로 도열한 환영 인파로 보이지만, 실상은 꽃을 건네다 뺨 때리는 격에 가깝다. 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다. 그나마 내 몸을 감싸던 온기는 순식간에 포로가 된다. 세찬 기운은 외투를 스며들어, 양복 상의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조끼와 와이셔츠, 최후의 보루인 메리야스까지 파고든다. 야리야리한 메리야스는 있으나 마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신 보송송보송송한 내복이라도 입을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든다. 이미 늦었다. 되돌아서 현관문을 다시 열어젖히고, 외투에서부터 양복 상의와 조끼, 와이셔츠, 메리야스까지 벗고 다시 내복을 입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출근 시간이 임박해 온다. 곤히 잠든 아이들이 깰까 두렵다. 이내 리얼리스트가 되어 어설픈 바램을 접는다. 현관문에서 승용차까지의 순례의 길은 퇴근 때의 그 짧은 거리가 저리도 멀게 느껴진다.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얼음장같은 카시트에 내 엉덩이짝도 시련이다. 불평이 곱절로 다가올 때쯤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이 이른 시각에도 집을 나서는 이 시대 가장들을 본다. 아파트 앞 편의점 코너를 돌아 다음 구간까지 가는 이면도로 어딘가에서 마주치는 신문 배달하시는 아주머니를 본다. 내 넋두리는 곧 사치다. 숙연함, 감사한 마음으로 메리야스를 스치는 살갗이 슬며시 따스해진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 아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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