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아들의 사소한 실수에 부모님은 버스를 한 시간 더 타셨습니다.
지방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서울에 있는 잔치에 참석하고 아들 집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하셨다. 마땅히 모시러 가야 했지만, 일정이 겹쳐 그러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던지.
택시를 타고 오시라 했지만, 서울구경도 할 겸 한사코 대중교통으로 오시겠단다. 아들이 혹여나 신경 쓸까 잘 찾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가장 쉽게 집을 찾을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일을 마치고 부모님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겠다 생각하고 집에 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드렸다.
"이상하다. 버스가 을지로를 돌아서 다시 원래 버스 탄 곳으로 가고 있다."
그 말만 들어도 반대 방향에서 버스를 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종로를 순환하는 버스의 종점이 우리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추운 날’... 순간 화가 났다. "아니, 버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전화를 하든지, 운전기사한테 물어보든지 해야지 그 버스를 그냥 타고 계셨어요?" 입 밖으로 이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종점에 내리라고 했으니 아마도 어찌 됐든 버스를 계속 타고 있으면 종점에 도착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속이 탔지만 지금 와서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종점에 마중 나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왜 반대 방향에서 타셨지? 제대로 알려드린 거 같은데. 다시 지도 앱을 열어 봤다.
‘헉’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곳의 ‘남북’ 방향을 거꾸로 본 탓이었다. 버스 타는 출구를 알려드릴 때도 다른 일을 하면서 정신이 팔려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출구도 잘 못 찾느냐’ ‘잘못 탔으면 빨리 내려서 갈아탈 일이지 미련하게 타고 계셨느냐’고 생각하며 순간 분통이 일었던 직전의 내 부끄러운 모습이 겹쳐졌다.
결국, 버스를 제대로 탔으면 20분이면 넉넉히 올 거리를, 정신없는 아들놈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부모님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종점에 도착했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울살이 자식놈에게 부모님은 웃으며 "백화점 같은 거 큰 건물이 많더라. 시내 구경 잘했다. 나는 니가 서울 중심가에 가서 쇼핑이나 하고 오라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부모님께 무조건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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