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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도로든 주차장이든 1m든 100m든 술 마시면 음주운전

흥미로운 헌법재판소 판결이 최근 나왔습니다. 단순히 보면 음주운전 사건이지만 의미를 확대하면 ‘개인의 자유’와 ‘공익의 범위’가 충돌하는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공익이 우선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음주는 이번 헌재 결정뿐 아니라 법원 판결 등에서도 점차 개인의 자유보다 공익적 가치에 더 방점을 두는 추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건 개요는 간단합니다.

A 씨는 혈중 알코올농도 0.1%의 술에 취한 상태로 공업사 안, 즉 주차장에서 포터 화물차량을 약 6m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대구지법 경주지원 재판부는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도로 외의 곳’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하죠. 명확성 원칙·일반적 행동의 자유 침해 여부·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도로교통법을 한번 살펴볼까요. 아래 조문만 보면 헷갈릴 수 있어 설명을 먼저 한다면 2조의 정의에 의해 ‘운전’이란 도로에서 하는 것을 말하지만 44조와 148조의2에 의해 음주운전의 경우에는 ‘도로 외의 곳’을 포함한다고 본 것입니다.

 

도로교통법
=2조 26. "운전"이란 도로(제44조·제45조·제54조제1항·제148조 및 제148조의2의 경우에는 ‘도로 외의 곳’을 포함한다)에서 차마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조종을 포함한다)을 말한다.
=44조(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 ①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건설기계관리법」 제26조제1항 단서에 따른 건설기계 외의 건설기계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 제45조, 제47조, 제93조제1항제1호부터 제4호까지 및 제148조의2에서 같다)을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148조의 2 ② 제44조제1항을 위반하여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을 운전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이 헌재 결정에서 쟁점은 ‘도로 외의 곳’에 주차장이 포함되느냐입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주차장도 ‘도로 외의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운전을 했더라도 "음주운전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평소 운전을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면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도로 외의 곳’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통념상 주차장에서 음주한 상태로 차를 주차하는 정도의 행위는 법 위반이 아닐 수 있다고 봤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헌재가 쐐기를 확실히 박았죠.

 

헌재는 ‘도로 외의 곳’이라는 법률상 공간은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으로 엄격하게 해석했습니다. 주차장도 당히 이에 해당하죠.

이런 경우가 있겠네요. 대리 기사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갔는데, 내리고 나서 보니 영 못마땅한 겁니다. 그럴 때 다시 차를 댄다고 주차를 하면? 네, 음주운전에 해당합니다. 유념하시길.

 

헌재 결정문 바로가기(클릭)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이 나왔는데 반대의견도 눈길을 끕니다. 형사처벌은 ‘도로 외의 곳’으로 한다고 해도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곳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거나, 법 조문에 ‘도로 외의 곳’ 다음에 ‘중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라는 문구를 부가하는 등 기본권을 보다 덜 제약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법조문이 과잉입법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공익이 일반적 행동의 자유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반대 의견은 이런 예상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 조항을 빌미로 위험성이 거의 없는 장소에서의 음주운전을 신고하거나, 사적 영역까지 경찰권이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다수 의견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주 상태에서 주차장이든 도로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음주운전 1m라도 하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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