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법과 언론

"아이, X발"

얼마 전 흥미로운 판결이 보도됐네요. 상대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혼자 내뱉은 욕설은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건데. "아이, X발"은 혼자 내뱉은 말이라고 모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줬습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러면 "야이, X발"이라고 했다면 유죄가 됐을까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유죄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천천히 살펴볼까요.


사건은 간단했습니다. 45살의 이모 씨는 2014년 6월 택시기사와 요금 시비를 하다가 경찰에 신고합니다. 아마도 경찰이 좀 늦게 출동했나 보죠. 그렇잖아도 성질이 나 있던 차에 이 씨는 경찰관이 늦게 도착했다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아이, X발"이라고 욕설을 했죠. 

 


2심에서는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사실 돈 50만원은 얼마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유죄냐 무죄냐는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죠. 전과가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죠. 무죄 취지로 선고하면서 사건을 2심 법원으로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친절하게 이 욕설에 관해 설명까지 하네요. '친절한 법원?' 선고 이유를 밝히려면 당연히 해야겠죠. 유죄를 뒤집고 무죄 취지의 선고를 한 것이니만큼. 재판부는 이 욕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지칭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자신의 불만이나 분노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흔히 쓰는 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지만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특정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언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죠.


형법 311조(모욕) :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자 그러면 모욕죄를 적용해 볼 때 "아이, X발"이 아니라 "야이, X발"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궁금해집니다. "아이, X발"은 혼잣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이, X발"은 ‘야’라는 단어의 통념상 상대방을 지칭한 거 아닌가요? 왠지 "야이, X발"은 "야이, X발놈아"의 축약어 개념으로도 볼 수 있죠. 영어로 번역을 해볼까요?  "아이, X발"을 번역하면 "I, ㅆㅂ"이라고 할 수 있고(?), "야이, X발"은 "You, X foot"


"야이, X발"이라고 했을 때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고 경찰한테 이 말을 실험해 보진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나저나 누구나 다 "아이, X발"의 X에 뭐가 들어갈지 아는데, 굳이 X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정답은 안다치고 오답은 뭐가 있을까요. "아이, 언발"(사건 배경이 6월인 걸 고려하면 이건 진짜 오답이네요) "아이, 새발"(자신의 발이 갑자기 새로 보였나) "아이, 손발"(손발을 보면서 할 법도 한 단어) 흥미로운 판결이라 농담 한번 해봤습니다.

 

2016/01/22 - [세상사/책책책] - <현대문명의 위기> 공생의 대안문명을 찾아서 

2016/01/21 - [세상사/시사스러운] - 언어 현실과 국어 규정 사이 

2016/01/20 - [인생사/수필인듯 시인듯] - 저마다의 독서법이 있다. 나의 잡식성 독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