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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국회에서 "추잡하다"고 외친 사람의 기본권

공공 질서를 확립하려 할 때 개인의 기본권·자유권과 마찰하는 일이 종종 혹은 간혹 일어난다. 위법, 탈법, 범법, 부패에 맞서는 사정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수사 기관이 ‘선’을 넘은 제재에 나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질서 훼손에 따른 대가를 부과하더라도, 이를 벗어난 범위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검찰의 기소 단골 메뉴인 '집회시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의 경우 현행법 위반과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법원이 때로는 유죄, 때로는 무죄를 선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공질서 확립이냐 집회시위의 자유냐의 문제는 둘 다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출처 : 헌법재판연구원 / 각종 해외 헌법 판례를 볼 수 있다.


위법 행위에 대해 개인의 기본권을 어느 선까지 인정하느냐 문제는 해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오스트리아 판례가 눈에 띄었다.

 

사건개요

2012년 10월 오스트리아 국회 개회 중 국회의원이 발언하는 와중에 방청하던 A 씨는 전단을 뿌리며 "뻔뻔스럽고 추잡하다. 오스트리아는 부패한 나라다"라고 외쳤다. 국회의장은 잠시 국회 개정을 중단하고, 관내 경찰에게 A 씨를 내보내게 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A 씨는 방청석을 빠져나갔다. 이 사건으로 A 씨는 2013년 3월 안전경찰법 위반으로 벌금 100유로를 부과받았다.


근거 규정이 되는 안전경찰법 81조 1항은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공공질서를 정당한 이유 없이 방해하는 자는 행정상의 경범죄를 범한 것이며 350유로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행정법원은 "국회의 현장에 청중으로서 참가하는 것은 의회제도가 보장하는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의회의 대중석은 정치적 표현의 장은 아니며 국회 개회를 정당한 이유 없이 방해하는 것은 공공질서를 방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판결을 파기했다. 헌재는 행정법원의 법 적용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A 씨에게는 안전행정법이 아닌 국회사무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사무규칙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회의장에서 정숙과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방청석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국회의장은 입법기관의 장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행정부로부터 이양된 역할이 있는데 입법기관의 장으로서의 역할은 국회사무규칙 ‘선’에서 그친다고 본 것이다. 이를 넘어 안전행정법을 적용한 것은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

 

흉악 사건이 발생하면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 법감정이 현행법과 괴리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땐 경찰이 송치할 때나 검찰이 기소할 때 이전에 적용하지 않던 온갖 죄명을 갖다 붙이는 ‘무리수’를 두는 것도 볼 수 있다. 단호한 처벌도 어디까지나 정해진 ‘선’을 넘진 말아야 한다. A 씨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생각이다. A 씨가 받은 벌금 100유로는 우리 돈으로 13만원 정도 한다. 소액 사건이 발단이 됐지만 이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컸다.

 

그나저나 A 씨가 국회에서 전단을 뿌리며 "뻔뻔스럽고 추잡하다"고 했는데 요즘 우리 국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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