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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책책책

담사동의 인학(仁學)

인학(仁學) / 담사동(1865~1898) / 산지니 출판사 / 2016. 2


당대의 석학이나 사상가들의 책을 읽을 때면 어떤 벽을 마주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이런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을까’ ‘책의 홍수 속에 사는 요즘 축적될 대로 쌓인 지식이, 과거 제한적 분량의 책만 마주한 석학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중국 청나라의 사상가, 담사동의 ‘인학’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생성과 소멸,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것, 과거와 미래, 상대성과 평등, 육체와 영혼, 인간의 뇌와 에테르·전기·정신 에너지, 불교와 예수교 공자교, 과학과 사회학, 주역과 대수학, 학문과 종교, 프랑스와 조선, 군주·교주와 민주주의….

 

이 책을 읽고 반성하게 됐다. 흔히 사상사라고 하면 서양 사상사를 가장 우선시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는 주역, 맹자, 묵자, 사기 등의 책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도, 아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공자 맹자 외에도 중국엔 분명 위대한 사상가들이 존재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담사동 역시 청나라 말기 중국이 격변기일 때 중국의 앞날을 고민했고, 더 나아가 인간과 학문, 종교 즉 ‘인의 학’에 대해 고민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담사동이 이 책을 쓴 나이가 서른세 살 때라는 것. 이듬해 담사동은 서른넷의 나이에 처형당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변법자강운동의 실패로 희생양이 된 것. 캉유웨이·량치차오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담사동은 이를 거부하고 1898년 9월 25일 체포돼 4일 뒤 처형됐다. 이 책을 읽어보니 왜 담사동을 중국 근대 혁명의 시초로 평가하는지 알만했다.

책 중간중간 흥미로운 부분도 눈에 띄었다. 담사동은 당시 조선을 ‘가장 어리석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솔직히 기분나빴지만, 그 시대 조선 상황을 생각하면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짧게 소개하자면

184p. 프랑스와 조선의 변혁기에 지식인들이 쓰는 말을 소개한 뒤 "프랑스 사람들의 학문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은 지구 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담사동은 ‘아는 것’을 왜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일까.

265~266p. ‘그대가 말해봐야 허튼소리일 뿐이지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라는 비판에 대해 담사동은 "행위는 유한하지만 지식은 무한하고 행위는 막히는 경우가 있지만 지식은 막히는 경우가 없다. 경험해서 얻은 지식의 범위는 틀림없이 추리해서 얻은 이성의 범위만큼 넓지 않을 것이다"…"참된 지식이라면 행할 수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자극 돋는 말이다. 알면 행하게 된다. 알아야 행할 수 있다.

 

(책 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번에 산지니 출판사와 경성대 글로벌차이나 연구소가 중국 사상사의 격변기에 등장한 ‘중국 근현대 사상총서’ 1차분 시리즈 4권을 발간했다. 담사동(譚嗣同)의 ‘인학’, 량치차오(梁啓超)의 ‘구유심영록’과 ‘신중국미래기’, 천두슈 등이 지은 ‘과학과 인생관’ 등 4권이다. 이 가운데 이제 1권 읽었을 뿐이다. 3권이 남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틈날 때 마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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