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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시사스러운

‘불임(不妊)’ 수식어 오랜만에 붙은 새누리

총선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소통을 외면한 독선적 국정 운영, 민심 이반의 막장 공천 등 각종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기세등등했다. 깽판을 쳐도 야권이 분열한 마당에 기본 과반은 한다는 오만한 예상 때문이었다. 지역별 각종 여론조사와 함께 등장하는 대선 주자급 여론조사에서도 밀릴 것이 없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이어 2등으로 올라섰고, 김무성 대표, 유승민 의원 등 여러 인물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 새누리당 홈페이지

선대위 해단식에서 지도부가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모습.

사진에 있는 원유철 원내대표가 다시 비대위원장에 추대됐다.


하지만 상황이 돌변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4·13 총선은 마치 ‘동시다발적 전투’를 연상케 했다. 각 대선주자가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허점을 동시에 찔렸다. 오세훈은 종로에서 패하면서 대권 도전 발판이 사라졌고, 김무성은 당 대표로서 참패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승민은 독야청청했지만, 함께 날아오를 날개를 다 잃었다.


새누리당에 불임 정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언제일까. 기억으로 쉽게 찾을 수 없어 검색으로 되돌아봤으나 잘 나오지 않았다. 인물들을 되돌아봤다. 3김 시대, 군사정권 등을 거친 이후 이회창이라는 후보가 있었다. 두 번의 대선에서 무참히 꺾이긴 했지만, 대선에 근접할 만한 가능성은 언제든 있었기 때문에 불임이라는 수식어를 새누리당(한나라당, 신한국당 등)에 붙이기 쉽지 않았다. 야당 10년을 겪었지만 이명박 박근혜라는 확실한 대선 주자가 있었고, 이 수식어는 오히려 과반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에 붙은 적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고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덩치만 큰 ‘불임 정당’ 수식어가 한동안 붙었었다.


지금 새누리당의 더 큰 문제는 단순히 대선 주자급의 날개가 꺾여버린 것에만 있지 않다. 강하디강한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 집권 기간, 당청 관계는 말 그대로 종속 관계로 전락했다. 국회와 의원들을 ‘뭐’로 아는 강한 대통령에 익숙해진 새누리당은 알게 모르게 수동적 성향에 완전히 길들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리더십이 그대로 이어지기라도 했다면 최소한 권력 공백은 없었을 테니 불임 정당 소리는 안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을 통해 박 대통령의 ‘1인 리더십’ 역시 중대한 상처를 입으면서 권력 공백까지 발생했다. 수동적으로 지시받는 데 길든 새누리당은 지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월은 비상한데 비상대책위원장을 세우는 것에는 한가함이 느껴진다. 비상시국을 비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이 필요한 때 오히려 관리를 외치고 있다. 흥분이 좀 가라앉으면 비상구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위기다.


민심을 등에 업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들썩들썩하는데 새누리당은 ‘대체 인물이 없지 않으냐’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비대위가 꾸려지더라도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니라 ‘20대 당내경선관리위원회’ 정도로 말이다. 몇몇 의원들이 문제 제기하고 나섰으나 20대 국회에 들어올 새누리당 의원들 면면을 보자면 얼마나 거기 호응할지 회의적이다. 19대에서 난리 쳤던 계파색 짙은 인물들이 주도하면 그대로 계파 싸움으로 비칠 것이고, 새로운 인물을 찾자니 상향식 경선을 통해 지역에 기반을 둔 인물이 대거 당선돼서 그런지 ‘새로운 정치인’의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수권(受權·선거에 의해 정권을 얻음) 능력이 없는 정당은 바람이 빠지는 풍선과 같다. 바람이 급격히 빠지는 중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 이만큼밖에 안 빠졌으니 다행’이라 여기면 곤란하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힌 것만 봐도 122석이라도 얻었으니 다행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한 번의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마도 콘크리트 지지층, 30%가 넘는 국정 지지율 등이 있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상황으로 보면 불임 정당이라는 수식어는 생각보다 더 오래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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