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뭔데 / 전우익 지음 / 현암사, 2002
초판이 나온지 10년도 더 된 책을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났다. 누런 표지에 좀 덜 누런 페이지 색이 끌렸다. 2004년에 돌아가신 전우익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한국의 농부작가로 꽤나 유명하다. 자연에 순응해 사는 삶에 대해 진솔하게 표현한 책들이 몇 권 더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에 가까운 듯 느껴지는 책 색깔만큼이나 작가는 현대인의 시각과는 차별화된 농부로서의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본다.
올핸 비어 있는 나무 밑에다 심었더니 처음엔 잘 크더니 그늘 져 단단치 못해 쓰러졌어요. 그늘에서는 튼튼하게 크지 못하는구나. 그런데도 나는 늘 어떤 큰 그늘에 기대며 살려 들었어요. 그늘 벗어나 살라고 콩이 반면교사 노릇 하는 듯했습니다.
…‘콩 심기’ 중에서
위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연이 주는 교훈이 곳곳에 묻어난다.
다음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참신한 시각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풀과 나무는 다니지 않습니다. 옮겨 다니는 식물이 있다지만, 거의 모든 식물은 싹튼 곳에서 한평생 삽니다. 풀과 나무는 왜 안 다닐까요?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안 다닌답니다. 인간 같은 동물은 먹을 걸 구하러 쏘다니지만 풀과 나무는 태양빛과 물과 흙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만드는 장치를 몸 안에 가지고 있어 쏘다닐 필요가 없답니다.
…‘줄무늬 삼나무’ 중에서
바쁜 일상에 익숙해져서인지 풀과 나무를 볼 때 '다니지 못하는' 애환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고정된 삶, 좀 지겹지 않을까? 뭐 이런. 하지만 작가는 풀과 나무는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안 다닌다고 표현을 했다. 쏘다닐 필요가 없단다.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인간이 갖지 못한 '쏘다니지 않은 특권'을 풀과 나무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린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사계절도 먹고 살지요. 계절은 피부로, 마음으로, 눈과 코로 마시지요. 누군가 말했어요. 살림살인 비록 구차하지만 사계절이 있어 풍성하다고요. 눈, 그 찬 눈이 어째서 마음을 그렇게 포근하게 해 주지요? 비는 소리 내며 오는데 눈은 소리 없이 와요. 한 수 위 같아요.
…‘호흡 맞추기’ 중에서
내가 사계절을 먹고 살고 있다는 걸 이 구절을 보고서야 비로소 와 닿았다. 배가 부른건 왜지? 느끼지 못했을 땐 배부를 수 없었다. 사계절을 먹고 산다는 걸 몰랐기에...
작가는 애틋한 풍경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우리 마을도 개명한답시고 편하게 산답시고 집집마다 보일러 넣어, 군불 지피는 집이 줄고 있습니다. 다듬이 소리와 함께 굴뚝에서 연기 피어오르는 애틋한 풍경이 사라져 갑니다. 현대가 깔보고 뒤떨어졌다는 원시가 그렇게 마음 편하고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겨우내 나무 하러 다니면서 맛본 마음의 흡족함은 천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었어요.
…‘나무 심는 즐거움’ 중에서
며칠 전 라디오에서 인권에 대한 이야기 나왔습니다. 사람이란 뭘까. 내가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나 소포 부칠 때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을 보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보냄, 받음만 쓰고 사람은 뺍니다. 참사람 구실은 도저히 못할 것 같고 가짜 사람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낡은 한옥’ 중에서
자연에 빗대 사람다움에 대한 생각, 또 아래 글에서처럼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학습이란 말이 있지요. 학은 배움, 습은 복습·예습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래요. 습은 익힘, 배운 것을 몸으로 실제 해보는 거래요. 지금 학교 교육은 배우기에 치우쳐 학교 나와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분교 여선생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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